-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숏폼 세상이 된 지금, 가장 브랜딩을 잘하는 브랜드 '테슬라'
작동하든 안 하든, 어떤 제품을 통틀어도 가장 신나는 데모가 될 겁니다.
— 일론 머스크, 2025년 11월 테슬라 주주총회 中 (Electrek)
보통 기업이 신제품 발표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하지는 않죠.
'작동하든 안 하든'이라뇨.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1년 가까이 전부터 공언한 셈입니다. 실제로 그는 사내에서도 "어려울 거고 잘못될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C자형 램프에 거꾸로 매달려 오르는 신형 로드스터 - 출처: Tesla 생중계
그리고 2026년 10월 15일 밤, 텍사스 맥그레거의 스페이스X 로켓 시험장에서 신형 로드스터가 C자형 램프를 타고 올라 약 21m 상공에서 뒤집힌 채 한 바퀴를 돌고 내려앉았습니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고요.
그런데 사실, 이날 세상에 자기 이름을 걸고 나선 브랜드는 테슬라만이 아니었어요.
같은 날 뉴욕에서 열린 포르쉐 미션 S 월드 프리미어 - 출처: Porsche AG
같은 날, 포르쉐도 뉴욕에서 브랜드의 미래를 걸었습니다. 1953년 포르쉐 550 스파이더가 처음 사진에 담긴 바로 그 부두에서, CEO 명의로 "앞으로 몇 년을 이끌 포르쉐의 방향"이라며 미션 S를 소개했죠. 70년 헤리티지를 꺼내 든, 포르쉐다운 발표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세상이 이야기한 브랜드는 테슬라 하나뿐이었어요.
두 브랜드를 가른 건 광고비도, 완성도도, 심지어 역사도 아니었습니다. 세상과 말하는 방식이었죠.
테슬라가 보여준 진정한 '숏폼 시대의 브랜딩'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시죠 0.<
브랜드 마케터의 째려보기는 현직자만의 시각으로 최근 트렌드, 마케팅 이슈를 쉽고 재밌게 분석하는 매거진입니다.
✅ 광고를 사지 않고 세상을 덮는 법1. 같은 날 공개된 두 슈퍼카의 엇갈린 운명2. 방탄유리가 깨지자, 티셔츠를 만들어 팔았다3. 이 시대의 브랜딩은 '화제를 설계하는 일'이다
01. 같은 날 공개된 두 슈퍼카의 엇갈린 운명
✅ 테슬라가 보여준 것
사실 이 발표는 환호가 아니라 냉소 속에서 시작됐어요.
샘 올트먼: 취소하게 해 주세요 제발
로드스터는 9년을 끌어온 약속이었거든요. 2017년 11월 콘셉트 공개와 3년 뒤 인도를 약속하며 예약금을 5만 달러나 받았었는데, 생산 일정만 최소 여섯 번 밀렸고, 공개 일정도 일곱 번이나 취소됐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예약을 취소했고, 취소 담당 이메일 주소가 아예 닫혀 있더라며 공개 저격까지 했어요. 머스크 스스로 예약자들을 "오래 고생한 분들"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바로 직전인 10월 1일 행사마저 강풍으로 연기되자, "이번에도 쇼일 뿐"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렇게 열린 무대에서 테슬라는 그 냉소와 함께 본인들 차까지 뒤집었어요. 바닥을 빨아들이는 힘으로 차가 거꾸로 매달리고, 스페이스X와 함께 만든 압축공기 추진기로 공중에 떠오릅니다. 슈퍼카라기보다 묘기에 가까운 스펙이었죠.
테슬라 차량 다섯 대를 넘으며 공중에서 뒤집힌 로드스터 - 출처: Tesla
솔직히 말하면 허점투성이였어요. 시연은 전부 무인이었고(운전석의 옵티머스는 전시용), 첫 가속 주행은 타이머 문제로 다시 달리는 장면까지 그대로 중계됐죠. 가격은 끝내 안 나왔고요.
그런데 바로 여기가 눈여겨볼 지점이에요. 그 허점들은 하나도 퍼지지 않았습니다. 퍼진 건 공중제비를 도는 6초였죠. 머스크가 올린 그 6초 클립은 다음 날 오전 기준 2,600만 회 넘게 재생됐고, 테슬라 공식 중계 게시물도 같은 시점 약 980만 회를 기록했어요. 냉소 속에서 시작한 발표가 하룻밤 사이 밈이 된 겁니다. "GTA 6보다 나는 차가 먼저 나왔다"는 농담과 함께요.
✅ 포르쉐가 보여준 것
같은 날 포르쉐가 공개한 미션 S도 결코 가벼운 발표가 아니었습니다.
포르쉐는 2025년 영업이익률이 1.1%까지 무너진 회사예요. 바로 일주일 전인 10월 7일 중기 10~15% 회복을 목표로 내건 새 전략을 발표했고, 미션 S는 그 전략의 첫 결과물이었습니다. 일회성 하이퍼카가 아니라 상시 판매 라인업으로 가져가겠다고 못 박았죠.
미션 S 공개 현장, 뉴욕 퀸즈 - 출처: Porsche AG
미하엘 라이터스 CEO는 "포르쉐는 한눈에 포르쉐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몇 년을 이끌 디자인 방향이라고 소개했어요.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내건 발표였습니다.
"날 수 있으면 다시 전화해", 신형 포르쉐에 쏟아진 조롱
— 슈투트가르터 지역지
그런데 포르쉐 본사가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지역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 이랬습니다.
기사가 인용한 온라인 반응은 더 가혹했어요. "2026년에 날지도 못하는 차를 내놓는다고 상상해 봐", "하필 날짜를 완전히 잘못 골랐네", "미안 형, 뭐라고 했어?" 같은 말들이었죠.
✅ 자동차 뉴스 VS 일반 뉴스
조롱보다 중요한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두 발표가 실린 매체의 성격이 갈렸어요.
테슬라의 로드스터는 로이터, CNBC, CNN, CBS, 포브스 같은 종합지와 경제지가 앞다퉈 다툰 반면, 포르쉐의 미션 S는 자동차, 럭셔리 전문지에 쏠렸어요. 즉, 포르쉐는 '자동차 뉴스'에 머물렀고, 테슬라는 그냥 '뉴스'가 된 겁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닿는 것과, 차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까지 닿는 것의 차이죠.
그렇다면 테슬라는 이걸 어떻게 해낸 걸까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02. 방탄유리가 깨지자, 티셔츠를 만들어 팔았다
✅ 깨져버린 방탄유리
2019년 11월 21일, 테슬라는 사이버트럭을 공개하며 "사실상 깨지지 않는다"라고 소개한 아머글라스를 자랑했습니다. 수석 디자이너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이 금속 구슬을 던졌죠.
2019년 사이버트럭 공개 행사, 깨진 앞문 유리 - 출처: CNET 영상 캡처
유리는 그대로 깨졌습니다. 머스크는 무대 위에서 "오 마이 갓"을 내뱉은 뒤 "그래도 뚫고 들어가진 않았네요, 그건 좋은 점이죠"라고 수습했어요. 뒷문 유리에 다시 던졌는데 그것도 깨지자 "나쁘지 않네요. 개선의 여지가 조금 있고요"라고 했습니다.
보통의 자동차 회사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영상을 편집하고,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을 겁니다. 안전이 생명인 업계니까요. 하지만, 머스크는 바로 다음 날, 공개 직전 리허설에서는 유리가 멀쩡했던 영상을 자기 계정에 올리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프란츠가 출시 직전에 사이버트럭 창문에 강철 구슬을 던집니다.
양산 전에 개선할 게 좀 있나 보네요 하하.
테슬라 사이버트럭 와장창 티셔츠
변명도 사과도 아닌 자조였죠. 실패를 지우는 대신 농담의 소재로 다시 꺼낸 겁니다. 심지어 테슬라는 깨진 유리 패턴을 넣은 티셔츠를 만들어 팔았어요. 실패를 굿즈로 만든 겁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주가는 다음 거래일에 6% 넘게 빠졌습니다. 하지만 사전 예약은 11월 23일 14만 6,000건에서 사흘 만에 25만 건으로 늘었죠.
6년이 지난 2025년, 구슬을 던졌던 폰 홀츠하우젠 본인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도 그게 훌륭한 마케팅 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 2025년 인터뷰 中 (Fortune)
✅ 공시에 "중요하지 않음"이라고 적는 회사
폰 홀츠하우젠의 "우리는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에요. 테슬라의 연차보고서를 따라가 보면 이게 숫자로 드러납니다.
- 2016~2018년: 광고·판촉비를 4,800만~7,000만 달러로 금액까지 명시
- 2020·2021년 보고서: 금액을 빼고 "중요하지 않음(immaterial)"이라고만 기재 - 2022년 이후: 광고비 주석 자체가 사라짐
2025년 연차보고서에는 아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비교적 낮은 마케팅 비용으로 판매를 달성해 왔다." 필요하면 광고에도 투자한다는 단서가 뒤따르긴 하지만, 광고를 '예외'로 다루는 회사라는 건 분명하죠.
✅ 2018년, 우주로 쏘아 올린 자동차
가장 유명한 장면은 2018년 2월 6일이었어요. 스페이스X가 팰컨헤비 시험 발사에 머스크의 개인 로드스터를 실어 우주로 보냈습니다.
우주로 간 로드스터와 '스타맨' - 출처: SpaceX (CC0)
우주복을 입힌 마네킹 '스타맨'을 운전석에 앉히고,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틀어둔 채로요. 유튜브 생중계 동시 시청자는 최대 230만 명, 당시 유튜브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테슬라의 이 방식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03. 이 시대의 브랜딩은 '화제를 설계하는 일'이다
✅ 첫째, 잘라낼 장면을 만든다
아무튼 멋지잖아 - 출처: Tesla
숏폼은 맥락을 가져가지 않아요. 장면만 가져갑니다.
로드스터 공개가 퍼진 건 행사 전체가 아니라 공중제비를 도는 6초였습니다. 그 클립 하나가 2,600만 회를 넘겼죠. 90분을 설명해야 이해되는 메시지는 애초에 숏폼에 올라타지 못합니다.
미션 S는 아름다운 차예요. 하지만 잘라낼 6초가 없습니다. 전통적인 신차 공개의 문법 그대로, 베일을 벗기고 디자인 철학을 설명하는 자리였으니까요. 잘 만든 발표였지만, 퍼뜨리기 좋은 발표는 아니었던 겁니다.
✅ 둘째,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여기가 타 기업들과 가장 차별적인 지점이에요.
사이버트럭 유리가 깨졌을 때 테슬라는 그 장면을 감추는 대신 직접 다시 퍼뜨렸습니다. 로드스터 공개에서도 타이머 문제로 다시 달리는 장면이 그대로 나갔고요. 머스크는 1년 가까이 전부터 "작동하든 안 하든"이라고 예고했죠.
실패가 리스크가 아니라 소재가 되는 순간, 발표는 결과를 기다리는 자리에서 지켜보는 자리로 바뀝니다. 안전하게 준비된 발표는 아무도 보지 않지만, 깨질지도 모르는 유리는 모두가 지켜보니까요.
(주의!) 만능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테슬라의 브랜딩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화제가 곧 매출은 아니거든요.
투자사 딥워터의 진 먼스터는 이번 공개를 두고 "전통 완성차를 망신 주는 것 말고는 상업적 가치가 없는 엔지니어링 과시"라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주가는 공개 직후 장전 4% 넘게 올랐다가 같은 날 결국 1.4% 하락으로 마감했어요. 테슬라의 차량 판매는 2년 연속 줄어드는 중이고요.
게다가 이 방식은 그대로 베낄 수도 없습니다. 머스크라는 증폭기와 스페이스 X라는 자산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장면이니까요. 로켓 시험장에서 차를 날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래도 원리 자체는 규모와 무관합니다. 화제는 예산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니까요. 사이버트럭 유리가 깨진 순간 테슬라가 쓴 돈은 0원이었습니다. 쓴 건 돈이 아니라 그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겠다는 판단이었어요.
결국 이 시대의 브랜딩은, 무엇을 말할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퍼뜨리게 할지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콘텐츠에는 퍼뜨릴만한 '6초'가 있나요?
#숏폼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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